감염병의 유행은 사람들의 몸뿐 아니라 정신에도 후유증을 만들어낸다.
정부는 여성을 보호하지 못하고/않고, 진보정당은 비판 논평을 철회시킴으로써 메갈리아 티셔츠를 구입한 여성 성우를 교체한 기업에 동의했다. 내가 이번 '티셔츠 사태'에 절망한 이유는 지난 25여년 동안 경험한 바지만, 국가-우파-좌파 사이의 이념(이 있기는 한가?)과 계급을 초월한 성의 단결, 즉 남성연대 때문이다. 진보정당은 기업이나 무능·부패한 정부가 아니라 여성과 싸우고 있다. 왜? 그들이 좋아하는 '정치경제학' 논리로 보자면, '진보' 이전에 '남자'일 때 더 얻을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일베의 폭력, 자신감, 신념, 막말은 마치 무정부 상태의 거칠 것 없는 주인공처럼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우리 사회는 메갈리아에 고마워해야 하는 것 아닌가? 거듭 묻는다. 누가 일베에 맞섰는가?
여성혐오에 대한 표현들은 언제부터 나타났을까. 손희정 연구위원은 온라인상에서 여성혐오가 가시화된 계기를 1999년 군가산점제 폐지 논란에서 찾는다. 이후로 2005년 개똥녀, 2006년 된장녀, 2007년 군삼녀, 2009년 루저녀 등의 단어가 해마다 등장했다. 이 단어들은 하나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 '여자가 그랬다'며 여성 일반의 문제로 만들어 버린다는 점에서 같은 맥락에 놓여있다. 2010년을 기점으로 이 단어들은 '김치녀'로 모아진다. 특정 발언이나 특정 행동을 하는 여성들을 향했던 혐오가 이제는 한국 여성 전반에 대한 혐오로 번진 것이다.
PD수첩은 이제 어떤 이에게는 면죄부가 됐다. 아버지의 짐을 고스란히 이어받아서 고달픈 '한국 남성'의 삶을 스스로 연민할 수 있게 됐다. 그렇게 힘듦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이해해줄 생각이 없는 '한국 여성'들을 조금 더 맘 편히 비난할 수 있게 됐다. 그러는 동안 오늘도 대부분의 한국 여성들은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같은 차별을 겪어야 한다.
8월 4일 방영된 MBC 'PD수첩'은 '메르스 갤러리'를 포함, 남성연대, 김치녀 페이지 운영자 등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여성혐오는 무엇인지, 그리고 남성들과 여성들은 각각 어떻게 느꼈는지 등을 방영하였다. 시작은 여성혐오였으나, 보도 방향은 여성혐오를 '왜 하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이 방송은 여성혐오라는 사회문제에 대해서, '가해자들도 피해를 받고 있으므로 남자와 여자가 서로 양보해야 한다'는 매우 모호한 양비론으로 결론을 냈다.
생각보다 높은 수위의 발언이 이어지자 사람들은 이들이 여성혐오자들과 똑같이 응수한다고 우려했다. 여성들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어간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메갤러'들은 진지하기보다는 유쾌했다. 살면서 한번쯤 들어왔던 말들을 뒤집는 것 자체가 큰 즐거움이었다. '광대가 양반을 놀려대는 것'을 혐오라 할 수 없듯이 차별받아온 그 사람들이 차별 발언의 주체를 '놀려댄다'고 해서 이걸 곧바로 혐오라고 할 수 없다. 이건 희화이며 풍자에 가깝다. 개그콘서트에서 여성이나 장애인을 놀리면 문제가 돼야 하지만 정치인을 놀리면 풍자로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